저의 미천한 지식으로는 이 논문이 정식적으로 발표된 중국학자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된 《至正條格》교주본에 대한 첫 논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당 논문은 文史 2008年第1輯에 수록되어 있으며, 북경대학교의 張帆이 쓰신 評韓國學中央研究院《<至正條格>校注本》라는 제목입니다. 사실 작년에  張帆선생님 수업이 바로 이 《至正條格》이었습니다. 교실 수업에서 말씀하신 사항과 큰 차이는 없어 보였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직접 책으로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해당 논문의 PDF버젼이 아직 안나온 관계로 올려드리지는 못하겠군요. 문제점 부분으로 요약하겠습니다. (칭찬이야...여기서 문제시 않은 다른 부분이 칭찬이라고 생각하면 될터이니 말입니다.--)



표점 : 상당히 높은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교감 부분 : 수업때도 말한 사항이지만, 타교(他校)부분에서는 상당히 불만족하시더군요. 그에 비해서 이교(理校)쪽에서는 긍정적인 표현을 하셨군요. 그리고 해당 사항의 몇가지 예시를 드셨습니다. 그리고 條目劃分부분에서 2가지 문제를 지적하셨는데, 지정조격의 조격 59조은 서로 분리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셨고, 반대로 斷例 233과 234는 합쳐져야 된다고 생각하시는군요.

주석부분은 완벽한 주석량은 아니지만, 일반독자에게는 괜찮을 정도의 주석이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일반적인 관명이나 지명의 주석을 안 한 부분은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원대공문에 나오는 특수한 서술어등에 대한 주석이 아쉽다는군요. 하긴-_ 那般者같은건....

그 외에 通制條格 元典章 元史 經世大典 과 기타 공문과의 연계성에 많은 투자를 했고 성공적이지만, 내용이 더욱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대신 같은 소스 뿐만 아니라 관련내용도 분류하여서 기술한 방법에 대해서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고...특히 사고전서의 원사부분에 5개의 지정조격의 내용이 있는 부분은 원래 학자들이 주의하지 못한 큰 발견이라고 했고...연대색인부분에서는 많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구부분에서는 흐음...

지정조적의 서명이 정해진 계기나 지정조격의 내용부분에 대해서 한국학자들의 생각을 반박하는데, 지정조격은 한국학자들이 강조하는대로 전통몽고세력과 한화된 몽고세력간의 싸움이 아니고 단지 그동안의 복잡한 법치체계를 가다듬을 생각으로 만들어진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흐음.....자세한 내용은 직접 보시면 되겠고...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원순제 제위전기에는 상층통치계급사이에서의 충돌이 선명하지만, 이러한 충돌은 지정조격의 내용에 영향을 준지는 않았다. 지정조격은 원조 통치 계급이 원조의 통치를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궁금해하시는 분이 있을지 몰라서 대충 적어보았습니다.
이정도 적어 놓으면 관련 분들은 다 알듯 해서 이만 줄입니다.(귀찮아서--;; )
더 자세한 사항은 역시 직접 논문을 보시는편이^^::


해당 사건은 1) 이미 정혼자가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없고. 2) 상중에 결혼을 할 수 없으며 3) 관리가 사건과 관련된 사람과 결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3)이었고, 이것이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다. 그러므로 해당 사건은 服内가 가장 큰 관건이었다.

 

의문 : 그런데 해당 사건의 관련자들은 몽고인으로 보이는데, 역시 상중에 결혼 할수 없었던 것인가? 물론 이름만 가지고 몽고인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만약 몽고인이라고 가정한다면, 상중에 결혼하지 못하는 조항이 몽고인에게도 적용이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몽고쪽에서도 해당 풍습이 있었다고 예측할 수 있다.

 

몽고인의 풍습중에 상중에 결혼하지 못하는 것이 있는가? 할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수계혼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어떻게 증명할가 머리 굴린 내가 바보다. 젠장-_ 깨닭고서 난 바보다라고 외쳐본다!!

 

    《三国志·乌桓鲜卑东夷传》注引《魏书》)而“父兄死,妻后母、执嫂;若无执嫂者,则己子以亲之次妻伯叔焉。死则归其故夫。”수계혼에 대한 자료

 

1) 해당 사례의 인물이 몽고인이라는 것을 입증(당연히 몽고인이 아니다.)

元史類編卷九 (文宗) 許蒙古色目人居喪守制 이 조항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문종정도에 몽고인이 많이 한화가 되었고, 수계혼도 안하고, 상중결혼도 안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법률적으로 구속하지는 않았던듯...

다른 사례

張大榮 - 居喪成親 도 역시 상중결혼이 문제가 된다. 당연히 몽고인이 아니다.

 

元典章 禮部
【禁治居喪飲宴】延祐元年七月十二日承奉江浙

行省剳付準中書省咨御史臺呈淮江南諸道行御史

臺咨備監察御史王奉訓呈伏以父母之喪三年天下

之通喪也死歛葬莫不有禮禮曰披髮徒跣居於倚

廬讓枕塊哭泣於世時□粥朝一溢米夕一溢米又曰

始死充於有窮既殯瞿瞿如有求而弗得既葬皇皇如

有望而弗至經曰食旨不甘聞樂不樂此孝子哀慼之

情既歛既葬以其時期而小祥又期大祥三年禫

霜露既降春雨既濡懷愴怵惕如將見之此子終身所

不忘豈拘於三年哉去吉日遠風俗日薄近年以來江

南尤甚父母之喪小歛未畢茹█飲酒略无顧忌至于

送殯管絃歌舞導引循柩焚葬之際張筵排宴不醉不

已泣血未乾享樂如此昊天之報其安在哉㒷言及此誠

可哀憫若不禁約深為未宜莫若今後除蒙古色目合

從本俗其餘人等居喪送殯不得飲宴動樂違者諸人

首告得實示衆斷罪所在官司申禁不嚴罪亦及之不

惟人子所有懲勤抑亦風俗少復淳古宜從憲臺剳付

各道禁治相應具呈照詳得此本臺看詳國家以風俗

為本人道以忠孝為先可以移忠可以事上忠孝既立

則人道修而風俗厚為治之至要也三年之喪古今通

制送終營葬人子大故車芻靈禮亦有之至若忘哀

作樂張筵群飲敗禮傷俗宜從合干部分定擬通行禁

止相應咨請照詳準此具呈照詳得此送據禮部呈

詳父母之恩昊天罔極終身而不能報聖人定立中制

以為三年之喪送終葬當盡其禮若居喪飲宴殯葬

又動樂聲實傷風化如準御史臺所言除古色目人

各從本俗外其餘人等禁治相應得此送禮部行移刑

部議擬去後今據禮部呈移準刑部關議得父母之喪

至於哀慼其居喪飲宴殯葬用樂皆非孝道除蒙古邑

目宜從本俗余並禁止敢有·    違犯治罪相

應關請照驗準此本部參詳如準刑部所擬遍行照會

相應具呈照詳都省咨請依上施行

해당 사료는 직접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상중에 술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에서 몽고족과 색목인은 제외된다. 다시 말해서 몽고족과 색목인은 전혀 다른 사상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추측하면 샤머니즘으로 인하여 부모님이 천당에 간다는 것 정도? 라마교의 혼례 사상에 대한 조사가 더 필요.

 

2) 다른 법률 조항에서 해당 사항이 있는지 조사 및 검토

元典章 刑部卷
【居喪為嫁娶者徒】至元七年十二月尚書户部契

勘父母之喪終身戚夫為婦天尚無再醮今隨処節

次申到有於父母及夫喪制中往往成婚致使詞訟繁

冗為无定例難便歸斷檢會到舊例居父母及夫喪而

嫁娶者徒三年各離之知而共為婚姻者各减三等省

部議得若不明諭禁約引訟不已寔是亂俗敗政以此

詳比及通行定奪以來定立格限渤海漢兒人等擬

自至元八年正月一日為始已前有居父母夫喪内嫁

娶者準已婚為定格後犯者依法斷罪聽離如此庶免

詞訟似望漸厚風俗呈奉尚書省移準中書省咨依準

施行

 

 

3) 몽고 풍습에 관한 고문중에서 상중 결혼에 대한 항목이 있는지 조사 및 검토

(상중에 결혼하는 경우가 있는지를 2차 논증으로 삼고, 최고로 좋은 것은 직접적인 항목!인데 없을듯-_)

 

4) 특히 샤머니즘쪽에서 상중 결혼에 대한 금기가 있는지 조사(이건 몽고뿐만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및 중앙아시아 각국의 풍습을 검토해봐야하는 짜증나고 힘든 작업이 될듯-_)

    狩猎民族常常因为猎物减少而深感不安,他们只能利用虚幻的巫术幻想去改变这种现状,从而获得某种心理平衡。我们在通古斯人的宗教仪式上看到,人们以象征的方式让内涵动物灵魂的象征物转生为新动物,从而达到增加动物数量,减轻心理负担的目的。萨满教代表动物灵魂并有复生能力的符号包括动物骨头、绒毛、动物眼睛等等。在仪式活动中,人们总是小心地收藏和处理它们,或防其不得转生,或怕它以灵魂力量伤害别人,总之要避免任何过失。在通古斯民族祭祀中,当作祭品的动物,像熊、鹿、猪、羊、鸡等,被吃掉后—它们的骨头一块也不能少地被收拢在一起,或风葬、或埋葬。安葬动物仪式的要求十分严格。兽骨安葬与野兽繁衍的关系密切,它的完好与否,涉及动物的绵延状况。这些内涵动物转生灵魂的兽骨、兽毛、兽皮、禽毛,象征他有许多动物神灵给予保护和辅助。在萨满经验中,由于魂骨被视作生命的再生之源,“归魂于骨”成为萨满法术中追求的主要目标。有的民族萨满死后要风葬,风化后捧拾其骨存放在小桦篓内,视为神灵。

 

在萨满教的古老信仰中,人们普遍畏惧死亡,不敢面对生命有限的现实。特别是当氏族部落重要人物去世之时,这个社会群体的常态生活面临着动摇和威胁。就是这时,氏族的丧葬仪式作为缓解人们精神危机的手段,及时地向人们传达出灵魂不死观念、灵魂再生的观念、以及重要人物的灵魂作为氏族祖先守护神的观念,于是给大家带来了某种超人间力量方面的信念和信心,从而减轻了内心的哀伤和社会的不安。关于氏族丧葬仪式,特别是萨满的丧葬仪式,在通古斯各个民族中普遍流行,成为氏族宗教仪式的重要种类。如鄂温克族的“尚德”仪式,满族的氏族萨满亡灵祭祀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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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通古斯语族民族的萨满教特点

孟慧英

 

七)丧上一词下一词与禁忌
    (白马)藏族的丧葬有火葬、土葬、悬棺葬、水葬等四种。
    1.西姜(zhugs sbyang)即火葬。据调查,文县白马河流域的(白马)藏族在清雍正以前均实行火葬。人死后,用绳子绑成屈膝蹲坐式,形似胎儿状,放进立式棺材内。请苯教巫师或阴阳先生择好出殡日期。死者在堂屋里停放几日, 主要以季节来定。(白马)藏区海拔在1500米~2500米之间,气候相对温和,夏秋死人在家不宜停放过长,冬春则可以适当长一些,一般在1~10天不等。40 岁以下男女病死或暴死后,尸体均不能抬进家门, 而在村头选一平地,将死者放进立式棺木内。富者从南坪上塘黑河、白河或平武等地请喇嘛或苯波巫师念经,贫者则请阴阳先生或道拜念经超度。出殡之日,亲戚及村中小伙子将棺木抬到火上一词下一词场,一路上锣鼓钹钗伴奏,死者家属哭声不断。妇女们中途返回。到了火葬场后,将棺木放在堆好的干薪上,苯波巫师或喇嘛或道拜或阴阳先生主持仪式。从棺顶点火。青烟直上云天,表示死者亡灵顺利升天;烟子不正、四处飘荡,表示亡灵未能升天,且游荡在村中,这样火葬结束后还得择吉日请喇嘛或苯波巫师念经超度。
    平武(白马)藏族火葬时间一般选在冬月至次年二月间进行。死者儿子或最亲的晚辈背尸至火葬场。南坪(白马)藏族则只对不满40岁及不正常死亡者施行火葬。火葬结束后,亲属及朋友抬些石头将尸骨围起来,砌成坟墓。平武(白马)藏族还在坟上插印有藏文超度亡灵咒语的布幡,男坟九杆,女坟七杆,以示引魂升天,不要扰乱死者家及村民的生活。
    2.得尔(dur)即土上一词下一词。到了雍正以后,该地实行改土归流, 改穿汉服,学说汉话, 一切照汉族行事,丧葬也开始实行土葬。文县(白马)藏族人死后,立即点上松明、自制的蜡烛和清油灯,然后尽快将死者的头发、胡须剃掉,再用净水将身体洗净,穿上准备好的寿衣。衣服不能少于三件,以绸缎或褐子为主,脚穿靴子。尸体平躺,四肢被捆住,头朝正堂,双脚对门(与当地汉族相反),脸上盖一张白纸。待死者娘家人赶到看过以后,再放入棺内。棺材一般在家停放三至五六天不等。这期间棺盖盖三分之二,留一条大缝,主要用来观察死者能否复活。死者头部的棺板叫“头档”,脚部的棺板称“脚档”。把死者放进棺木后,在脚档外侧摆白面馍头。若死者生前好酒,则将斟满酒的铜壶也置于此。在物品前面点上清油灯。死者亲戚均带一只雄鸡、纸和柏香等前来奔丧。出殡前晚上,所有来的亲戚要召开会议。死者子女要向亲戚们详细汇报死者患病的情况、子女是如何侍候的、死者有什么遗言等,死者的亲戚都要仔细聆听。汇报完后,亲戚代表讲话,总结死者一生的为人和功劳等。若子女生前未敬孝道,娘家人则在地上撒上黄豆或包谷,让子女们跪在上面,接受亲戚们的指教,以示惩罚。解放前不孝子女在丧场挨打也不乏其例,解放后则以批评教育为主。发丧的时辰由苯波巫师或阴阳先生来定,一般都是天不亮就发丧。人们点上火把,锣鼓钹钗伴奏。发丧的路线是约定俗成的。发丧所经过的人家都要在门前用麦麸、乔草点火,经过时各家主人都要站在自家门口。一旦经过,主人马上用脚或木棍捣毁火堆,意为死人将一切晦气都带走了。谁家死人都一样,所以死者家人是不会计较的。妇女中途返回。到了坟地,首先往坟坑里倒些热气腾腾的米汤,在坟坑里烧些纸、柏香,然后再将棺材放入坑内。棺材上面放一排棚木,再用土掩埋,上面栽些松树或柏树。最后用石头砌个坟门以便祭奠时烧纸、点蜡、焚香、富者还要立碑。
    南坪下塘,人死后把死人放进棺材里,抬到避风向阳的窝穴里,待其老伴死后,又将棺材敲锣打鼓抬回来放在堂屋,择好吉日同时发丧埋入墓穴,上一词下一词法同上,位置为男左女右。
    平武的(白马)藏族土葬除尸体仰身平躺埋葬外,还有屈肢土葬。掩埋后垒石成墓堆,有的也兴立碑,用汉字刻上死者的名子、生死日期以及立碑人名等。
    3.曲得尔(chu dur)即水葬。在(白马)藏区, 不满周岁的婴孩夭折后, 婴孩的父亲或母亲将孩子用布包上或装在背篓里,抛入河中,让河水冲走。较大一些的儿童死后,则在避背的水沟里挖一坑,将其埋葬。据说婴孩死后不会成为鬼魂,夭折后就会即刻消失。
    4.项若(phyang ro )即悬棺葬。解放初这种葬法在(白马)藏区还有过,现已不复存在。这一上一词下一词法一般针对死于麻风病和其他传染病者,还有30岁以下的年轻暴死者。棺材简陋,长方形,像火柴盒,因此又称“火匣子”。以上情况的死者,其尸体只能停放在村外几里地的地方。发丧时苯波巫师或阴阳先生要在棺内放小石磨作禳镇,防止死者鬼魂害人。身强力壮的抬尸人先要用柏香熏身,以示瘟疫不再介入,鬼魂不敢缠身,然后将“火匣子”快速抬到事先在土崖上挖好的洞穴中。“火匣子”头部朝西,脚部朝东,右侧裸露在外。悬棺放置处均为向阳的地方。据当地人讲,太阳的暴晒,不仅使尸体很快干枯,而且可杀死传染病菌。在文县铁楼乡入贡山村西三里处还能见到这种悬棺。
    5.泽木恰(vdzem cha)即禁忌:
    (1)不能从神柜前横过。在神柜前结束祭祀活动, 要面对神柜退出。因为神柜是祖先神灵的所在地。
    (2)主人或客人不能从火塘或铁三脚上跨过,必须绕过。 因为火塘是火神、灶神的居住地。
    (3)客人不能随意坐男主人的位置, 除非男主人将位置让于你,否则为不礼貌。
    (4)女人不能在山神庙或土主庙周围随意走动。 否则要保无事,少则3年,多则12年。如在规定期限内出现自然灾害等,村民会责怪你,还要请道拜、苯波巫师或阴阳先生安神,所花费用全由该家承担。
    (5)孕妇不能探望外伤病人,否则病人的伤病会加重, 她也会受人指责的。
    (6)要探望病人,病人家要先在门口撒上柴灰, 以示将邪气挡在门外, 探望者方可入内。
    (7)家人远道回家,家门口撒些柴灰,以示邪气不能带进家门。
    (8)晚上串门,要在门口大声咳一声,否则主人会不高兴, 因为鬼魂才会悄然而至。
    (9)妇女生孩子,任何男人不得入内。
    (10)孕妇不能吃兔肉,否则孩子会成豁口。
    (11)正月初一至初五不能将屋内垃圾及洗脸水倒出,而要将拉圾堆放于门后,将水洒在屋内,意为财不能外流。
    (12)正月初一至初四,不能将馍馍分开,将柴木折断,以示凡事都要完整。
    (13)腊月三十至正月初四,将背篓藏好,否则年内会遇到老虎。
    (14)腊月三十至正月初四,将绳子藏好,否则年内会处处碰到毒蛇。
    (15)在交易牛马等大牲畜时,不能用嘴讨价还价,卖买双方将手放在袖筒内捏指交易,否则牲畜会受到损害。
    (16)跳朝格时,不准入赘者和外族人跳,否则村中不安。
    (白马)藏族丧葬有土葬、火葬、水葬和悬棺葬四种。无论那种葬法,在藏族历史上都是有过的,现今主要为土葬。藏族第一至第七代藏王都是从“登天之绳”升上天空的,因此没有坟墓。天梯斩断后,第八代藏王开始实行土葬,因此土葬在整个藏区是比较普遍的。至于(白马)藏区的土葬与其他藏区土葬的区别,笔者认为主要在于(白马)藏区受相邻汉族的影响,结合了藏汉两个民族的葬法,因而形成了自身丧葬的特点。火葬是藏民族比较考究的一种葬法。像将死者捆绑成胎儿状,广大藏区的作法都一样,意为生死相联,生时何状,死时复此状。这很可能与佛教的轮回理论有关。水葬同样和其他藏区一样,一般是针对婴孩,而悬棺葬在藏区未曾听到。(白马)藏族的悬棺葬与我国南方的悬棺葬是不同的:(白马)藏区的悬棺葬只限于传染病死者和暴死者,所以一座土崖上最多也是一个,悬棺均在向阳的土崖上,最高也仅在四米左右;而南方的悬棺却都在高不可攀的石崖上,并且密密麻麻地放置着,可见这种葬法在当地是很普遍的。为此我认为:南方的悬棺葬很可能与人们希望灵魂早日升天有关,(白马)藏族的悬馆葬却是借助阳光杀掉传染病菌和暴死者的邪气,使活着的人健康快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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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马)藏族信仰习俗现状调查研究

杨冬燕

 

内蒙古阿拉善左旗信仰伊斯兰教的蒙古族穆斯林
王玉霞

    (2)丧葬:蒙古族的传统丧葬方式有土葬、野葬和火葬。土葬即人死后无论老年、壮年或幼童,均赤身装入白布袋里,在家放尸3至7天,诵经焚香。出灵时,尸体由窗户抬出。棺材置于墓穴中,以土埋葬。火葬较为普遍,野葬已不多见。蒙回严格遵守伊斯兰教速葬、土葬、薄葬的原则。当一个人濒危时,请伊玛目念讨白(“忏悔词”)向安拉祈求饶恕其一生的罪孽,家人提念清真言。去世后用清洁的水给尸体净身,用三丈六尺白布裹身,俗称穿“克凡”,当天或第二天埋葬。众人将尸体抬往墓地,由伊玛目带领众人举行殡礼入葬。

 

 

 

라마교 결혼 사상에 대한 조사 필요

 

 

 

중얼중얼 :

...아..내가 천재였으면 해당 자료들을 다 암기해서 따로 조사 안하고 그냥 툭툭 논증할 수 있을터인데--....이걸로 이번 학기 논문을 쓱쓱 할까나.....더 쉬운거 없나 몰라...다른 것이 생각이 안나...아..미치겠네.ㅠㅠ

이제 학기를 마감하면서 지정조격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저라는 인간은 법률이나 정치사쪽으로는 절대 가지 말아야겠구나라는 결심을 하는 순간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빠트린것 같은데...

 

왜! 지정 조격은 인터넷 버젼이 없는거지?

조선왕조 실록도 있고! 삼국사기도 있잖아!

 

책으로 출판되어 나왔다는 것은 이미 전산화작업은 다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출판만 되어나오고 인터넷판으로는 없다니 무슨 이런 것이 다 있나!!!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나, 어떻게든 연구비용을 출판을 통해서 보충해야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긴 하군요.

 

하지만...정말...나름 한국 학자 만으로 표점이나 주석도 좋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마지막의 전산화로 된 인터넷 버젼이 없다는 것은 왜인지 조금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나중에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다음 인터넷 버젼이 공개될 것이라고 상상만 해봅니다.

지정조격은  원나라를 공부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이다. 지금까지는 소실되었다고 알려져 왔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노력으로 사대문 가문에서 2002년 찾아내게 되었다. 원나라 관련 학자들이 이 책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을 가질런지는 말을 안해도 아시리라.

그 리고 보존 작업으로 시간을 보낸 뒤, 한국 학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으로 이 지정조격의 주석과 교정을 본다. 그리고 2007 8월 말에 국제 회의를 하면서 공개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국 학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이라는 사실이다.

아래 내용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올려진 칼럼이다.

http://www.aks.ac.kr/aks_kor/Aks_News/Aks_NewsView.aspx?class=Press&id=357&p=0



본인은 북경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소수민족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 장판 선생님의 몽고사를 듣는데, 바로 이 지정조격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 장판 선생님도 위에 언급된 회의에 참가하셨고, 이번에 출판된 책을 가지고 오셨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해당 교주본에 대한 평가는 아예 없으셨다. 개인적으로 교주본의 평가가 몇일 만에 내려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다. 회의때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보였다고 하지만 진정한 모습은 돌아가서 연구해봐야지에 가깝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기 수업이 끝나면 장판 선생님의 모종의 평가가 있지 않을까 싶다. 혹은 수업중에 있을 수도 있고 말이다. 만약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면 그것은 매우 대단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한국 학계의 능력이 중국 학계에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지정조격의 한국 학계 교주본은

중국 학계에서 받아들여질 것인가?!


개인적으로 김호동 교수님 책의 팬으로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으면 한다...
(
이유 꼬라지 하고는-_;;)

여담으로 책을 주문하기 위해서 어머니에게 부탁을 했는데, 영풍이나 교보와 같은 대형 서점에 없어서, 출판사까지 연락하셨단다. 어머니!!!...... 최고!!! 그리고 아마 본인이 북대에서 재학중이라는 것을 말하셨나 보다. 출판사에서 중국에서 책에 대한 수요가 많냐고 물어봤단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지정조격 자체의 사료적 가치는 정말 대단하다. 몽고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보물인 것이다. 당연히 수요가 있다. 하다 못해서 북경대에서만 이번에 몽고사 수업을 듣는 연구생이 20명이다. 중국 전국으로 따지면 대충 몇명의 학생일까? 아니 그냥 중국 대학 도서관에 각각 3개씩만 팔아도 그게 얼마인가?! 문제는 수요가 아니다. 현재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은 한국 학계의 교주본이다. 과연 교주본이 중국 학계에서 받아 들여질 것인가가 문제인 것이다.

복사본을 대충 보았지만, 중국어판으로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주석의 몇몇 한국어 부분만 번역하면 끝날 정도로 보인다. 사실 한국어 부분 번역 안해도 독해 자체에는 문제가 없긴 하다. -_-;; (그리고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이미 중국어 주석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어로의 번역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역시 교주본을 중국 학계가 받아 들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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