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될 금기 중에 하나이다. 사실 너와 나의 다름만 이해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그것이 안된다. 우리 여기서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간에 자주 있는 문답을 한번 보기로 하겠다. 아실분은 아시겠지만, 본인은 무교론자이다.

무교론자의 전형적인 말.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아라.
그리고 그를 믿는 자들이 행복한지 증명해 보아라.
무엇보다 영원히 평안한 천국이라는 곳을 증명해 보아라
.


그에 대한 기독교인의 전형적인 대답.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다는 걸 증명 시켜보일 수 있는가?
천국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걸 증명 시켜보일 수 있는가?



사실 이 논리는 미안하게도 너무나 쉽게 깨진다. A 사실에 대한 부정이 곧 A 반대항에 대한 긍정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계시는 것이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긍정하려면, 그 논리의 근거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논리는 아주 간단한 예시로 깨어져 버린다.

"나 바로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위의 질문에 너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냥 "내가 예수의 재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아라"라고 간단하게 말하면 끝이 나는 문제인 것이다. 이 논리구조는 위의 전형적인 기독교인들의 대답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본인도 알고 있다. 종교라는 것이 논리적일 수 없다. 인간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서 논리적인 잣대를 가지고 증명해보라는 것은 그리 타당한 질문이 아닌 것이다. 단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종교의 절대적인 논리라고 말해지는 것은 사실 결코 절대적인 논리가 아니고, 단지 그것에 대한 믿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을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코메디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이야기 해야겠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실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 하느님에게 악에 물들지 말고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고 비는 행태는 어디까지나 웃기는 발상의 소산이다. 예수님도 행하라고 했다. 그러니 지금의 교회는 과연 그러한가? 하나님을 전일근무가능한 만능하인으로 생각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고 그것을 비평하는 자들에게 교회의 반응은 무엇인가?

본인은 각각의 종교를 존중한다. 그것은 그 사람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절에 가면, 법당에서 참배를 드리고, 스님들에게 예를 갖춘다. 교회를 가면, 예배를 하는데 떠들거나 잡담을 하지 않을 정도의 정신머리는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 대리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스님이나 목사님을 절대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들의 말에 틀린점이 있다는 것도 충분히 숙지하고 있다. 그런데 설교시간에는 그런 반박을 못하는 것이 너무나 답답할 뿐이다. 답답해도 대 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 있다고 하면 좀 괜찮아 지려나...무교라고 하지 말고....바로교라고 할까나...후..
아님 샤머니즘?! 무당?! 안 그래도 어릴때 박수 제의도 받았었는데 말이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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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포고는 무자비하고, 강압적이다. 그들은 반드시 하느님을 믿어야만 세상이 구원이 되고, 자신이 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각자의 자유가 있고, 믿을 권리 만큼의 믿지 않을 권리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그들은 하느님에 나라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다면서 설득하고, 협박한다. 그래도 믿지 아니한다면 포기해도 좋으련만, 그네들 식의 표현으로는 “그들도 같이 하느님의 영광과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계속 된 회유를 한다.

 

미안하지만, 나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죽었다가 깨어나도 교회라는 곳을 좋아할 없다. 친가는 기독교에서 장로를 맡고 계신 분이 명이나 있고, 외가는 비구니 스님에 불교회화를 하시는 이모까지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철학교수인 아버지의 철학과 도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온 나에게 하나의 종교를 믿으라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라는 소리와 같다. 나에게는 이미 너무나 자연스러운 종교관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말은 이런 이야기를 때마다 인용하게 되는 아버지의 명언으로 요약된다.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좋다고 생각하고, 부처님의 말씀도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을 믿는 자들을 믿지 않는다. ”

 

감정적인 부분을 떠나서, 이성적으로 나를 설득시켜주었으면 한다. 내가 교회보다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하나 뿐이다. 교회에는 무조건적으로 비이성적으로 한가지 원리를 먼저 세뇌시키려 한다.  하느님이 존재한다라는 절대적인 말이다. 말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그것을 증명하려는 어떠한 행위조차 없다. 단지 말일뿐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나 묻는다. “하느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아라. 그리고 그를 믿는 자들이 행복한지 증명해 보아라. 무엇보다 영원히 평안한 천국이라는 곳을 증명해 보아라 말에 제대로 대답해 기독교 관계자는 아직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같은 말을 뿐이다. 믿어라! 그래서 나는 교회보다 불교가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스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보통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하다. “나도 몰라서 알려고 한다.”. 자신의 모름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와 모름을 긍정하고 그것을 이겨내려는 불교 중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할 밖에 없는지는 너무나 간단하다.

 

만약 이성으로만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감정으로 받아 들이라고 한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겠다. 내가 싫은 것을 어떻게 하나? 싫다. 싫다. 무조건 싫다. 감정적으로 전혀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받는 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과는 정반대로 생활하고 생각하는 모습에 이미 지쳐있다. 아닌 사람들도 있다고?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너무나 따르는 사람도 있다. 어디까지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혹은 말씀을 인도하는 목사들의 대부분이 제대로 하는 모습부터 보여라. 그럼 믿고 따라 줄지도 모른다. 개판을 치면서 무슨 할말이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어찌 보면 쓸데 없을지도 모르는 이런 말들을 계속 줄줄 늘어놓는 나로서는, 종교를 믿는 다는 것은 맹신밖에 되지 않으며 그것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포기하는 바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행복하게 웃기만 하는 데에도 인생은 짦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너무나 힘들다.

 

교회는 나에게 감옥이다. 속에서 나는 고문을 받고 있다. 그들은 계속 외친다. “믿어라. 믿어라. 믿어라.” 하지만 죽이는 것이 빠를 것이다. 나는 믿지 아니한다. 무엇인가를 완벽하게 믿지 않는다. 맹신하지 않는다. 그것을 만들고 행하는 자, 모두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롭고 싶다. 무엇보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말라고 하느님에게 빌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시험에 들고, 고뇌에 빠져서 속에서 웃으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야 말로 현실이고 지옥이며, 천국인 것을

그네들의 말을 돌려주어야 겠다. "믿음은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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