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린 여자에게서 매정스레 떨어져가는 오입쟁이의 작태를 떠올리면서 그는 쓸쓸하다. 지금 이렇게 마주서도 얼글 손을 뻗쳐 빼내고 싶도록 힘쎈 끌심을 가진 책은 없다. 한때는 책장마다 빛무리가 쳐보인 벅차던 책들이면서도. 평생을 거친 계집질 끝에, 사랑한다고 다짐해가며 살을 섞은 여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보면서, 막상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은 상대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게 되는 오입쟁이의 끝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최인훈의 "광장" 중에서...
사촌동생이 가지고 온 책을 읽다가 보인 구절이다. 그리고 구절이 나의 마음에 가득 차 버렸다. 아니. 나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주면서도 비겁하게 후려파고 있다. 나는 아직도 책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직도 그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다. 아니. 미련을 끊을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한 번 잡으면 마지막 내용이 끝나기 전에는 어떤한 일도 하지도 않았던 나.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모습을 회상하며 담배를 손에 잡는다.
낭만돼지 데이지 2가 현재 다음에서 연재중입니다. 전편인 데이지 1이 사랑이야기였다면, 이번 2편은 이별뒤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지금 깜찍한 여친님과 매일 투닥투닥 퍽퍽퍽 하면서 살고 있으니 이런 이별이야기에 별로 감흥이 오지 않는 것이 당연할 텐데 이번 16화 우연한 만남을 보고 순간 멍해졌습니다.
제 나이 한국나이로 27. 매번 세계 나이인 25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20대도 이미 꺽인 상태. 이 나이 먹고록 과거가 없었다는 것은 어찌보면 거짓말 중에서 거짓말이겠지요. 뜨거웠던, 이상했던, 묘했던, 차가웠던, 사무쳤던, 슬펐던, 울부짖던, 치를 떨던 모든 기억들이 마음 속에 묻혀있는 것이지요.
요요에게 혼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보고 싶군요. 그때 그 순간의 그녀들이...
제가 인용한 페이지는 요기!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왠만하면 데이지 1부터 차근 차근 보실것을 추천해드립니다. 처음부터 보시는 주소는 요기! 입니다. 시간을 투자해서 보셔도 후회하지 않으실 만화입니다. 개인적으로 만화 왕국 다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네이버는 몇몇 작품에만 투자하고, 성향이 비슷하게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다음은 다채로운 만화를 선보이는군요. 또한 만화를 보는 UI도 다음쪽이 훨씬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다음이야 말로 웹툰 왕국입니다.
본 글은 데이지2을 보고 홍보하고자 쓴 글입니다. 저 자신은 행복하게 여친님과 하하호호 웃고 있답니다. 오해하지 마셔요 -0-! (...요요야...그냥 홍보글이야 홍보글^^:: )
역사는 더이상 진실이 아니다. 단지 현재의 해석일 뿐이다. 역사라는 것을 공부하면 공부 할수록 마치 "오언절구"와 같이 일정한 규격속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는 완전하지 못하고, 완전해 질 수도 없다. 마치 지금의 우리 현재도 완전히 구현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로웬덜은 완벽한 역사를 포기하라고 말한다. 그런것은 환상이며 오만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되도록 완벽한 역사를 위해서 노력하라는 어정쩡한 결론을 제시한다. 신이 죽고, 더이상 절대적인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시대에 영원히 닿지 않을 지평선을 향해서 나아가나는 것이 옮은 것일까?
또한 일반인이 역사를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게 됨으로서, 역사에 대한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인 존재가치를 너무나 귀중하게 생각하는 로웬덜 자신도 말했던 역사학의 치명적인 단점을 어떻게 처리해야 되야 된다는 말인가? 역사가 역사 이상의 것이 되었을 때, 민중을 선동하는 도구가 될 뿐인데 말이다.
어마어마하게 두꺼워서 접근을 금지하고 있는 듯한 책. 그러나 역사학도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또한 역사에 관심이 있는 우리의 애국적인 국민들에게도 권하고 싶다. 환단고기를 즐겨 보는 것을 말릴 생각은 없으나, 역사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이론을 이 책을 통해서 이해하고 다시 한번 환단고기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진실이라는것은 있긴 있는건가?
책에 밑줄 긋기
이 새로운 과거는 비교를 통해 교훈을 제공하던 역할을 점차 그만두게 되었지만, 현재를 정당화하고 찬양하는 유산. --- p14
과거는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는 현재에 삼켜져 없어진다. --- p15
인식의 친숙함, 신념과 행동의 재확인, 사례가 제공하는 지침, 개인적-공동체적 정체성 인식, 현재 경험의 통시적 풍요로움, 지금 당장의 속도와 압박으로부터 잠시 쉬거나 벗어남, 이것들은 과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익들.
즉 과거는 끝났고 그렇게 때문에 현재와는 달리 요약이나 요점 정리가 가능하다고 보는 사실.
유해하거나 상처를 덧나게 할 역사는 잊어버리거나 삭제해버리고 싶은 충동 --- p22
과거에 접근하는 방식들로서 기억, 역사, 유물.
기억이란 속성상 개인적.
공유된 자료와 결론이 공적인 정밀조사를 거칠 수 밖에 없는 역사.
모든 역사는 기억에 의존. --- p27
역사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현재의 견해에 의존.
기억과 역사는 둘다 물질적 잔존물로부터 중요한 것을 추론해내고 강조점을 얻는다 --- p28
과거란 그때 일어났던 그대로가 아니라 일련의 지속적인 구성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경직된 전설처럼 웃자란 관념이나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포기하게 되고, 그리고 그러한 전설을 다시 만드는 행위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유익하기도 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 --- p30
과거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불안을 야기한다. 조작에 노출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된 과거는 가정된 역사의 진실성을 손상시킬 뿐 아니라 망가지기 쉬운 현재를 함축하고 위태로운 미래의 전조가 되기도 한다. 우리가 고색창연한 문서들이 상습적으로 위조된 것이며, 오래된 그림들이 모방된 것이고, 유물들이 날조된 것이고, 고대의 건물들은 현대화되고 새로운 건물들이 구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둘러싼 모든 것의 정체성은 의심스러워진다. 우리가 유산과 연속성을 위해 의존하고 있는 과거가 완전한 가짜는 아닐지라도, 원본과 차우의 사고와 행위에 의해 확대 되고 변경된 잔재들의 복합물임이 판명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지각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과거를 왜 그리고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를 아는 것은 예전의 인식을 구속하던 신화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그러한 탈신비화를 달성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은 우리에게 개인의 과거를 재조사 하도록 - 그래서 재구성하도록 - 고무한다. 종종 강박관념적 행위는 너무 커버린 과거에 매몰된 앞선 시기의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오래 숨겨온 감정이나 사건을 소생시키는 것은 과거에 대한 의존을 떨쳐내는 데 이바지하고 자유롭게 선택된 미래에 이르게 한다. 잘못 해석된 생활사에 사로 잡히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현재의 용어로 일관되고 믿을 수 있는 생활사를 재형성한다. 그러나 오늘의 상황이 우리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재구성할지를 경정한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각각의 새로운 생활사가 더욱 더 수정될 것임을 알게 된다. 우리의 새로운 과거는 예전의 것과 마찬가지로 마지막 것이 아니다. --- p856 - 8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