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린 여자에게서 매정스레 떨어져가는 오입쟁이의 작태를 떠올리면서 그는 쓸쓸하다. 지금 이렇게 마주서도 얼글 손을 뻗쳐 빼내고 싶도록 힘쎈 끌심을 가진 책은 없다. 한때는 책장마다 빛무리가 쳐보인 벅차던 책들이면서도. 평생을 거친 계집질 끝에, 사랑한다고 다짐해가며 살을 섞은 여자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떠올려보면서, 막상 다시 한번 안아보고 싶은 상대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게 되는 오입쟁이의 끝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최인훈의 "광장" 중에서...
사촌동생이 가지고 온 책을 읽다가 보인 구절이다. 그리고 구절이 나의 마음에 가득 차 버렸다. 아니. 나의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해주면서도 비겁하게 후려파고 있다. 나는 아직도 책을 사랑하는 것 같다. 아직도 그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다. 아니. 미련을 끊을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한 번 잡으면 마지막 내용이 끝나기 전에는 어떤한 일도 하지도 않았던 나.
이미 과거형이 되어버린 모습을 회상하며 담배를 손에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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