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China라는 잡지가 있습니다. 중국에 관한 몇 개 안되는 잡지 중에 하나이지요. 제 친구중에 따인이라고 있는데, 녀석이 여기 중국특파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틈틈히 도와주기는 하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인터뷰 섭외 해야된다며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서 친구들에게 물어봤지만 소득이 없었습니다. 그녀석 진짜 급했는지 결국 제가 하게되었죠. (저기 먼산을 바라본다.)


시간도 많이 흐르고 해서 한 번 올려봅니다. 아직도 어색하답니다.


사진의 머리 스타일은 작년 이맘때랍니다.
저 머리 다시 해볼까 생각중이랍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또 다른 제한구역
베이징대학교 역사과 1학년 김바로


KIM BA RO
-그때는 1998년 처음 중국땅을 밟았을 때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아버지께서 베이징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계실 때 방학을 이용해 처음 중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는 한마디로 '이보다 더할 순 없다'였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2차선 도로는 8차선으로 변했고, 심지어 허허벌판이었던 곳이 상권을 형성해 고층 빌딩들로 즐비했다. 이 곳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변하게 될지 내가 더 궁금해진다.

-힘들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부모님의 따끔한 충고는 이곳에서 기대할 수 없다. 본인 스스로 판단하며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아직 미숙하나 실천에 옮기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있다.

-이래서 좋다. 여기서는 여러 나라에서 온 수 많은 문화와 지식을 가진 유학생들을 접할 수 있다. 이를 잘 살려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은 큰 재산이 된다. 특히 중국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므로 중국인의 의식과 행동에 대해 더욱 가깝게 알게 된다.

-중국사람 완전하게 믿을 수 없는 사람. 99%의 믿음이 있더라도 언제나 1%의 의심을 남겨놓아야 할 존재로 생각한다. 중년층은 문화대학명을 겪으며 중국인끼리도 서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외국인이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청년층은 어릴 때부터 교육 받아 온 '중화사상'의 영향으로 대부분 중국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과제 중국점령. 물론 군사적인 점령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등 문화사업을 이용한 중국점령을 하고 싶다.

-한마디 중국인들에게 학창시절 만난 외국인은 평생 그 나라 국민의 모습을 대변할 것이다. 개개인의 언행이 한국을 대표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생활 한다면 최소한 후회 없는 유학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후배들의 건투를 빈다.


(사진 밑의 조그마한 글씨들...)
중국과는 중학시절 방학기간에 인연을 맺은 김바로 씨. 인터뷰 도중 범상치 않은 언행을 보여준 베이징 대학 역사학도로 곧 철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해 학업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또래 친구들보다 아저씨-아줌마들과 더 잘 통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수줍은 듯한 미소는 영락없는 20대 청년의 모습이다.


출처 : With China 04년 2월호





뱀다리 : 뭐라고 할까? 잡지나 매체의 한계라고나 할까요? 제가 말하고 하던 것들이 짤려 나가고 쓸려 나가서 몇 조각만이 남아있군요. 한숨이 나온다고 할까요? 노무현이 언론에 대해서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 마음에 와 닿는다고 할까요? 뭐...기본적인 하고 싶은 말들은 하긴 했습니다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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