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주의 최초 기록은 유교의 기록이다. 그것은 스승에 대한 예를 강조한다. 혹자는 해당 일을 지하학당으로 연관시키기도 하지만, 본인은 丁强의 생각처럼 보편적인 민속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계주는 한대에 관직에서 기본적으로 스승이라는 의미의 유교식으로 해석되었다. 하지만 오도미교의 계주는 종교와 통치가 합쳐진 방식이었다. 그리고 조조정권은 어느 정도의 비유교적 정권이었으며그래서 많은 비유교적 요소를 받아들인다. 그 중에서 조조가 새로 만든 군계주의 경우 그 성격이 지방통치적인 요소가 들어가 있다. 이는 과거의 유교적인 계주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고로 본인은 해당 군계주가 도교 혹은 도가의 영향을 받은 관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특히 동진시대와 같이 오도미교(천사교)가 정권을 잡는 와중에는 이러한 군계주의 성격이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군계주의 출현빈도와 성격으로 해당 시기의 도교의 영향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현대적인 의미로 보면, 이상야시꾸리한 불법 종교가 사실은 정부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이 되어있고, 사실상 뒤쪽에서 국가를 움직였다는 지금의 프리메이슨 음모론이 역사 시대에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생각해보라. 바로영광교가 지금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계의 인물들을 다 잡고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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