张其凡、惠冬《金朝“南人”胡化考略》《史学集刊》2009年7月第四期,P47

금나라가 중원에 들어온 이후에 중원지역은 남송과 단절되고, 통치계층인 여진문화의 유입으로 인하여 교차문화지대가 형성된다. 이러한 다문화는 중원의 한인(汉人=南人)이 북방민족화(胡化)가 되게 한다. 이러한 북방민족화는 의복이나 머리모양 그리고 습속등등에서 나타나서 심리적으로 남송과 멀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남인의 북방민족화로 오래전부터 한인과 북방민족간의 중간지역이 되어오던 연운(燕云-지금의 베이징일대)지역과의 정치-문화적 차이가 줄어드는 결과를 가지고 왔고 이는 원나라의 4등급제의 현실적인 기초로 작용하게 된다.

남인의 북방민족화 원인 및 과정
1) 남송과의 단절
2) 여진인 집단이주 : “悉迁女真土人散居汉地”
3)북방의복의 유행 : 북송부터 이미 북방의복이 유행하였고, 남송에서도 유행했는데?
4) 강제적인 두발 북방민족화
5) 한인(汉人)그룹의 관방진출

남인의 북방민족화의 구체적인 사례
1) 옷과 머리모양의 변화 – 북방식으로. 특히 머리모양의 변화는 주목할만함.
2) 언어와 예의의 변화 – 이른바 북방언어의 창조. 북방음악의 유입
3) 심리적인 태도 변화 – 여진과 한 그룹이라는 생각들이 늘어남.


* 한국에는 아직 그리 크게 다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되는데, 연운(燕云)지역이 참 재미있는 곳이다. 한족과 북방민족의 교차하는 곳으로서 사실 위진남북조에도, 춘추전국시대에도 계속적으로 융합의 지점으로서 작용해온 곳이다. 연운지역의 융합사를 집필하는 것만으로도 평생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듯 하다.

* 위의 글을 보면서 쉽게 연상이 되는 것이 일본제국의 대한제국합병 이후의 민족융합정책이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역시 당시의 일제는 상당한 연구를 한 상태에서 한 것이다. 역사에서 가정을 하는 것은 개그이지만, 재미있음으로 해본다면^^;; 만약 식민지였던 기간이 50년만 더 유지가 되었더라면 사실상 현재의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보다는 제국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조금 높다. 다만 일제의 방식은 동등한 대우가 아니라 차별적인 대우였고, 그러한 차별적인 대우가 결국 대립을 이끌어내기에 그것을 일제가 수정하지 않는 이상 분명 금방 분열되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민족정책도 제도상으로는 소수민족에게 많은 혜택을 주지만, 실질적으로는 융합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 역시 상당한 문제가 발생중이며,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눈치 채신 분도 있겠지만, 본글에서 나오는 용어는 최대한 소위 "학계용어"를 배제하고 모르는 분도 이해하실 수 있는 쉬운 단어를 선택하였다. 그래봤자. 내용 자체가 재미없어서 안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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