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무책임한 정부공사가 민초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전검찰관인 현직 기자 씨에차오핑(谢朝平)이 직접 관련 자료와 인터뷰를 조사하여 담담하지만 날카롭게 재구성하였다. 이 책의 가치는 씨에차오핑이 이 책을 출판한 이후에 섬서성(陕西) 경찰서에서 씨에차오핑을 말도 안되는 명목으로 강제연행하고 가두어서 문자옥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면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1954 년 4월 중국 국가계획위원회는 황하개발계획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큰 형님이었던 소련의 전문가들의 지도아래  중국 역대 모든 정권의 축복이자 고통이었던 황하치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고작 8개월 만인 12월에 <황하 수해를 다스리고 항하 수리를 개발하는 것에 대한 종합계획보고서>(보통 계획보고서로 약칭)이 만들어진다. 계획보고서의 핵심 내용이 바로 싼먼샤댐의 건설이었다.

1955 년 7월 전국인민대표회의 2차회의에서 현재 장강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싼샤댐과 같이 중국 역대 최고의 치수계획이라는 환호를 들으며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계획에 따르면 싼먼샤댐은 360미터의 높이로 건설되고, 그 안에 360억 입방미터의 물을 가둘 수 있었다. “계획 보고서"에는 중국 역대 어떠한 정권도 해내지 못한 황하 치수를 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싼먼샤 댐을 만듬으로서 90만KW의 전기를 공급할 수 있으며 5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농지에 물을 공급할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몇 천년 동안 받아온 황사의 홍수 피해를 없앴을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또한 황토가 섞여 있어서 흙탕물이었던 황하를 맑게 변화시킴으로서 황하 하류의 강바닥이 점차 높아져서 홍수의 가능성이 높아져서 계속 황하 하류 물길을 바꾸어주어야 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싼먼샤댐 三门峡



그 러나 “계획 보고서"는 싼먼샤 상류에서 흘러나오는 황토가 쌓여 30년정도가 지나면 더 이상 댐이 아닌 최대 크기의 인공폭포가 된다는 기초적인 문제점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 상류에서는 계속 황하 상류의 황토가 내려오는데 하류로는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댐에 쌓일 수 밖에 없다는 초등학생들도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원리조차 무시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계획대로 360미터의 높이로 싼먼샤댐을 건설할 경우  1천평방 킬로미터 이상의 농지가 유실되고 90만명 이상의 주민들이 수몰지구로부터 이주를 해야되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았다.

실제로 1957년 4월 처음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런데 1961년 2월 9일  싼먼샤댐의 물높이가 332.58미터가 되는 순간 밀려들어오는 황토들로 인하여 강바닥이 순식간에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계획은 강행되었고 1962년 2월 처음으로 15만KW의 발전기를 돌리며 맑은 황하물을 하류로 내보내면서 싼먼쌰댐은 성공적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동관潼關과 싼먼샤댐 사이의 싼먼샤댐 상류에서는 단지 57년부터 62년 사이에 강바닥에 4.5M의 황토가 쌓이게 되었다. 또한 기존에는 아무 문제가 없던 황하의 가장 큰 지류인 위하(渭河)에 토사가 가득한 물이 덮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 책의 작가 씨에차오핑谢朝平



1965 년 싼먼샤댐은 “2개의 터널과 4개의 파이프"라는 1차 개조계획을 실행하게 된다. 2개의 터널과 4개의 파이프를 연결해 황토가 강바닥에 쌓이는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안이었고 실제로 1968년 8월에 해당 프로젝트가 완공됨에 따라서 일정부분 황토의 퇴적문제는 완화되었다.  또한 1971년부터 2차개조에 들어가서 8개의 유도수로를 건설하여 황토물을 배출하고 깨끗한 물을 남기려고 시도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개조개획의 결과 발전기는 당연히 돌릴 수도 없었으며, 홍수를 막기보다는 댐의 수위가 315미터일때 배수량이 초당 9060 입방미터에 달하여서 하류의 홍수를 걱정해야될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상류의 황토 퇴적문제도 제대로 해결이 안되어서 1992년 8월 황하의 지류인 위하(渭河)와 낙하(洛河)에 큰 홍수가 나서 4백 평방킬로미터 이상의 전답이 유실되고 5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겼다. 그 중 3만 명은 돌아갈 집을 아예 잃어버리는 큰 손실을 겪었다.

싼먼샤 댐은 상수도 확보, 홍수방지, 발전등의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로 시작되었지만, 현재 환경파괴의 주범이며 홍수방지나 발전에도 문제가 있음이 들어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댐 건설로 인하여 발생하는 이주민들이다.

1954 년의 계획대로 360미터의 높이고 설계가 되었다면 5만평방킬로미터의 농지와 90만명의 이주민이 발생하게 되었다. 1958년 조우은라이(周恩来 주은래)총리의 의견에 따라서 335미터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1.3만 평방킬로미터의 농지와 31.89만명의 이주민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댐 완공 후에 강변이 무너져 내려서 8.49만명의 이민이 추가적으로 발생하였기에 실질적으로는 40.38만명에 이르는 이재민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이주민들중에 3.99만명은 “당을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에 현혹되어 닝샤宁夏나 깐쑤甘肃등의 황량한 지역으로 이주를 하였고 수 만명이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오랜 투쟁 끝에 드디어 관중평원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으나 자신들의 농지는 이미 외부에서 들어온 다른 이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이주민들은 다시 황량한 근처 산악지대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이주민들과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도 끊임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싼샤댐의 건설로 인하여 온갖 고행의 행군을 한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본 이야기의 저작권은 쎄에차오핑谢朝平에게 있으며, 본인은 해당 작품이 정식 판권을 받아서 한국에 출판되기를 희망하며 전체작품의 30%에 미치지 못하는 분량을 번역하여 소개하도록 하겠다. 다만 본 번역판 자체의 저작권은 본인에게 있으며 상업적 이용을 불허한다.

다시 말해서 상업적인 이용이 아니며 출처표기를 분명히 할 시에는 자유롭게 배포할 수 있다. 더 쉽게 말하면 출처표기를 명확하게 하고 유무형의 대가를 타인에게 요구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펌할 수 있다.

* ...어차피 이런 종류의 글 읽을 사람 별로 없다는 것을 알지만, 중국에 대해서 깊고 재미있게 파해친 글이기에 조금이나마 번역해보도록 하겠다.............중국이 아웃사이더 주제라고 하니까 아니라고 했지? 중국"돈!!!"이야 다들 관심이 있지. 그러나 정작 중국 그 자체에는 다들 관심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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