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 논문을 오도미교(五斗米教)을 쓴다는 명목으로 태평경(太平经)를 대충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사이에 도교의 심오한 내용이 아닌 이상한 부분만 찾고 있는 바로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태평경의 을 보면, 일남이녀(一男二女)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故令一男者當得二女,以象陰陽。陽數奇,陰數偶也。

예로부터 음양과 같이 한 남자는 두 여자를 거느린다. 양은 홀수이고, 음은 짝수이기 때문이다.

(王明《太平經合校》 卷三十五 一男二女法第四十二)


뒤쪽 문장은 타자가 치기 귀찮아서 계속 작성하지 않았지만, 여자가 2명보다 많으면 음이 너무 강해지고, 남자가 여러명이면 양이 너무 강해서 안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럼 여러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왕은 어떻게 해석해야될까요? 이 경문에서는 왕은 하늘의 정신(天之精神)이기에 각각의 지방에서 한 명의 여자를 얻어야지, 그러지 아니하면 양기가 너무 강하여 가뭄이 든다고 합니다. 


그럼 태평교도, 곧 황건적은 일부다처제였던건가요? 한 명의 남자가 2명의 여자를 거느린다면 남녀의 생리적 구조를 보았을 때, 보다 빠른 번식?!이 가능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태평교도가 그렇게 죽어라 탄압을 당했어도 지속적으로 민란을 일으킬 수 있었던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해당 사항은 사상적인 배경외에도 당시에 여성의 인구다 더 많아야된다는 현실적인 조건이 필요할 터인데, 이것의 경우 빈번한 전쟁으로 남자의 인구가 줄었으리라 맘대로 상상해 봅니다.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상상이 가능합니다.(이게 중점입니다 -_)


당시에는 지금의 러시아처럼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고, 남자는 능력이 없어도 편안하게 여자를 고.를.수. 있었지 않겠습니까? 아...행복한 나날들이었을거 같습니다. 있는 넘이 더한다고 여친님이 있음에도 이따구 글을 적어서 맞을짓 골라서 하는 바로였습니다.


아....역사를 공부하면 할 수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마음이란...(먼산...)

(역시 모든 남자의 로망은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아니겠는가?! 으응?::)


하라는 제대로 된 공부는 안하고 엉뚱한 상상이나 하고 있는 엉터리 역사학도였습니다. -_-;;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