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前秦)의 부견(苻堅)은 소수의 저족(氐族)의 수령으로 왕국까지 세우게 된다. 그러나 저족의 갑작스러운 인구팽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저족을 국경지역에 분산 배치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저족의 힘을 분산시키고, 타민족이 반역을 일으킬 가능성을 높인다는 이유를 내세운 저족 대신들의 강력한 불만을 가져오게 된다. 실제로 전진은 선비족과 강족의 반란으로 인하여 멸망하게 된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황제는 필히 자기 사람을 주변에 두어야 된다. 외부인들이 힘을 키우게 되면 반란이 일으킨다."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그런 한가?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부견보다 조금 일찍 갈(羯)족 국가를 세운 후조(後趙)의 석씨 일가의 예를 살펴보자. 석씨 일가는 자신의 민족 이외에 다른 이들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갈족들을 수도 부근에 밀집시키고, 두 명의 아들에게 각각 10만 가구씩 통솔하도록 하였다.


수도 주변을 "자기 사람"으로 채웠으니 안전할 것 같은가? 석호가 죽고 나자 수도 주변의 갈족끼리 내전이 벌어져서 몇 년 만에 나라는 물론 민족 자체가 사실상 없어지고 만다. 



누가 "내 사람"인가? 자신의 이익과 일치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다. 네가 성공하면 같이 성공하고, 네가 패망하면 같이 패망하는 사람이 "내 사람"인 것이다. 만약 단순히 가족, 같은 지역, 같은 학교라는 이유로 "자기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편협할 뿐더러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행동이다.


세계를 뒤흔든 몽골제국도 같은 이유로 멸망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몽골인만을 "자기 사람"으로 취급하고 그 외의 민족은 차등을 두어서 대접하였다. 그 결과는 제국의 빠른 붕괴이지 않았는가?!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부견의 몰락은 단순히 "자기 사람"인 "자기 민족"을 분산 시켜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주변의 조언을 듣지 않고 동진(東晉)과 전쟁을 벌여 패배한 것이 원인인 것이다.


본래 "외부인"인 사람들도 부견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부스러기라도 얻기 위해서 부견에게 충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부견이 처참하게 패배한 순간 상황은 변하고 만다. 부견 밑에 있어봤자 어떠한 이익도 있을 수 없는데 무엇하러 계속 충성을 바쳐야 하는가?


사실 이런 상황에서는 "외부인" 뿐만이 아니라 "자기 사람"도 외부인으로 변해버리고는 한다. 실제로 부견과 동족이자 친구일 뿐만이 아니라 친척이기도 했던 여광(呂光)도 부견의 패배 소식을 듣고서는 반란을 일으켜서 후량(後涼)의 황제로 등극해버리지 않는가?




정리해보자. 황제에게 "자기 사람"은 형제도 아니고, 고향친구도 아니다. 황제에게 자기 사람은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의 능력이다.


만약 당신의 능력이 뛰어나다면 어떤 사람이든 당신에게 충성을 다하는 "내 사람"이 될 것이고, 반대로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설령 친 아들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의 자리를 빼앗으려 할 것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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