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면 근심하고, 가까워지면 고민이네

중국 고대 몇 천 년의 봉건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한번이라도 황제를 뵙기를 소망하였고, 황제가 하사한 성은이 넘치기를 원하였다. 만약 황제의 곁에 있게 된다면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잠시만 잘 생각해보자. 군주 곁에 있는 것은 호랑이 곁에 있는 것과 같다. 황제의 권력은 분명 강력하여 그 반사이익을 누릴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권세와 부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황제의 성격이 거지 같기 마련이기에 조금이라도 성격을 건드리면 큰일이 나고 만다.


그래서 황제와 자주 대면을 해야되는 사람들에게 "황제접대학"은 고위험 고수익의 필수과목이었다. 만약 황제를 잘 접대한다면 부귀영화가 굴러들어오게 되지만, 조금의 잘못이라도 있게 되면 목숨이 날아가기 마련이다. 부귀영화와 목숨이 달린 일인데 어찌 열심히 배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보통 황제와 멀어지면 나쁘고, 가까우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황제와 멀었을 때는 대접을 받아놓고서는 정작 황제의 곁으로 와서는 화를 당하고는 한다. 정말이냐고? 정말이다. 



예를 들어서 서한(西漢)의 가의(賈誼)는 능력이 출중한 인재였다. 그가 작성한 과진론(過秦論)은 그가 죽은 뒤에도 몇 십년간이나 정치-군사 형세를 좌지우지하였다. 물론 당시의 황제인 한무제(漢武帝)도 매일 매일 가의를 자신의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가의가 매번 황제를 볼 때마다 승진은 고사하고 병신꼴이 되어갔다. 한번은 어렵게 밤의 객잔에서 둘 만의 자리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에게 귀신이야기나 들려달라고 했으니 말이다. 답답해서 미칠 노릇이었을 것이다.



남북조시대의 북제(北齊)인 이덕림(李德林)도 괜찮은 예시가 될 것인다. 그는 문재가 뛰어날 뿐만이 아니라 군사적 재능도 있었다. 처음 북제(北齊)에서 관리를 하고 있을 때 훗날 중국을 통일한 당시 북주(北周)의 대신 양견(楊堅)은 언제나 그를 칭찬하면서 자신의 품으로 오기를 갈망하였다. 결국 이덕림은 양견의 수하로 들어오게 되고 천하를 통일하는데 크게 이바지 하게 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양견은 천하가 통일이 되면 이덕림을 후대할 것이라고 공언 하여 천하의 부러움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덕림은 양견을 모시는 10년동안 월급은 한푼도 오르지 않았을 뿐만이 아니라, 결국에는 "공무원의 상업금지"이라는 명목으로 쫓겨나게 된다.



사실 그들도 나름 재수가 좋은 편이라고 해야될 것이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기 전에 자신은 한비자(韓非子)을 신하로 둘 수 있는 그릇이 아니라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진시황은 한비자를 발탁하고서는 결국 옥에 가두고 죽여버렸다. 


황제를 제대로 접대하지 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상사를 잘 모시지 못해도 직장을 잃을 뿐이니 다행이라고 해야될까?



황제는 천하제일의 의심광일 뿐만이 아니라 자기만 아는 녀석이다. 무엇보다 천하에서 가장 탐욕스러운 인간이다. 어떤 물건이든 모두 그의 것이어야만 한다. 인재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가의나 한비자 혹은 이덕림 역시 자신의 품에 있지 않을 때에는 그들을 차지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진짜 그들을 가지게 되면 의심병이 발동한다. 우선 "저녀석이 그렇게 잘났으면 난 먼데?"라는 질투심이 생겨난다. 그 다음으로 "저 녀석의 잘난 능력으로 지금은 나를 도와줄 수는 있지만, 결국 나를 해치려는 거 아냐?"라고 하는 두려움이 생겨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황제 아래서 아무리 뛰어난 인재든 살아남기 힘들다.


소동포(蘇東坡)는 가의가 주발(周勃)이 천평(陳平)과 같은 다른 공신들과 친하지 못해서 권력싸움에서 소외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틀렸다. 만약 황제의 마음에 일말의 틈이 없었다면 어떤 신하가 뭐라고 지껄이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주발 역시 한무제의 눈 밖에 나서 옥에 갇히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오히려 가의가 주발과 친한 사이였다면 더욱 큰 일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황제의 입장에서는 "능력 있는 것들끼리 뭔 짓을 하려고 하려고 그렇게 친한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황제접대의 좋은 예인 사마상여(司馬相如)를 살펴보자. 사마상여 역시 처음에는 이덕림과 같은 처지였다. 발탁이 되기 전에는 황제가 직접 "왜 나에게는 이런 인재가 없느냐?"라고 해놓고 정작 정식으로 임용이 되자 대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자 사마상여는 직접 지방관리직을 신청하여 황제와 멀어진 뒤에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서는 다시 중앙으로 불려와서는 황제에게 태산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일을 건의해서 한무제(漢武帝)의 마음을 뒤 흔들어 놓는다. 그리고서는 빠르게 퇴직신청을 해서 자신의 집에서 떵떵거리고 산다.


이것이 바로 "멀어지면 근심하고, 가까워지면 고민이네"라는 원리이다. 사실 다 쓸데 없는 소리일수도 있다. 어떻게 황제의 의심을 받지 않느냐가 처세의 핵심이다!


본 글에 관련된 내용은 역사에서 처세술을 배운다 : 황제접대학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맞춤법과 번역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환영합니다. 
본 글은 한국인에 적합하도록 의역하였습니다.(퇴....고...따위...훗_-)
본 글은 출판을 위한 번역이 아니며, 오직 여러분들의 덧글로 힘을 받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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